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다. 내 경계를 지키지 못한 채 무수한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은 말 못 할 아픔으로 하루하루가 힘겹다. 어디에 꺼내놓기도 멋쩍고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틀어박혀 아파하기에도 어색한 내 마음속 통증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처럼 현대인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금융부터 패션, 코스메틱까지 다양한 분야의 회사에서 겪은 내밀한 이야기를 에세이로 풀어낸 에세이가 출간돼 직장인들의 아픔을 보듬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어쩌면 현대인이면 누구나 겪을 법한 사건들을 소재로 우리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황유나 작가의 ‘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가 바로 주인공이다.
황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여린 감수성이 밴 서정적인 글로 눈물 글썽거리게 하다가도 다시 미소를 짓게 하는 등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듯이 빠져서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이면 내 인생도 축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특히 저자는 카드회사, 증권사, 코스매틱회사를 다니며 때로는 2년 짜리 비정규직으로 잘리는 아픔을 겪기도 하고 비정한 팀장으로 인해 밥벌이의 고달픔을 느끼며 팀장이 된 후 중간관리자의 고충을 겪기도 한다.
그러던 중 옆집 이웃의 자살을 목격한 후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찰해보기도 하고 섬세함을 요구하는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잦은 실수를 저지르는 탓에 자신이 성인 ADHD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하며 미래가 불안해 점집을 찾아다니기도 하는 등 누구나 한 번쯤 현대를 살아가며 겪어봤을 법한 고민과 사건을 솔직하고 서정적인 문장으로 풀어냈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왜 나에게’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이제는 안다. 인생은 하나의 커다란 퍼즐이라는 것을 그래서 파편화된 조각도 내 삶이고 찢긴 조각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된 저자는 남보다 뒤처지지 않고 좀 더 완벽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현대인들에게 “손에 움켜쥔 조각 중 어느 하나 하찮은 것이 없다. 빛나든 그렇지 않든 이제는 상관없다. 다만 조각 하나하나마다 부여해 온 ‘의미’라는 비장한 척도는 지워야겠다. 사는 게 한결 가벼워지도록. 그렇게 된다면 우리 인생도 축제가 될지 모를 일”이라고 조언한다.
정규직이란 도대체 뭘까?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도 왜 월급 명세서에 적힌 숫자는 이리도 차이가 나는 걸까? 지금 얼마나 많은 청춘이 정규직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자신을 달래가며 애를 쓰고 있을까? 저자는 정규직을 시켜준다는 말에 2년간 열심히 ‘을’로서 살았지만, 결국 회사에서 잘리는 날을 맞은 그때의 심경을 담담히 적어 내려간다.
2년 계약이 만료되던 날 회사에서 잘렸다. 팀장의 변명 아닌 변명에 따르면 한 임원이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타의에 의한 실직 상태라니. 백만 원 대의 실업 급여로 생계를 이어 가야 한다니. 막막했다.
저자의 간결한 묘사는 그래서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우리 중 그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니 이미 겪었던 아픔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생’이나 ‘송곳’이라는 웹툰과 드라마에서는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이들의 고통을 가슴 먹먹하게 그려내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의 글이 마음에 더 와 닿는 것은 1인칭 시점으로 그 감정의 굴곡과 억울함을 내가 겪듯이 세세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좀 서운했지만 내색 없이 묵묵히 최선을 다한 본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 냈다. 평소 팀장이 내 새끼들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며 장담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유령처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저변의 불안을 M에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M이 단순한 선의로서 내 마음을 팀장에게 전달한 모양이었다.
다음 날 팀장이 빈 회의실로 나를 불렀다. 내 두려움을 가라앉혀 주기 위함이었다. 팀장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장담했다.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니 정규직 전환에서 누락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재차 확인해주었다. 이어 농담조로 계약서에 서명할 준비나 하고 있으라며 웃었다.
그로부터 3달여쯤 지났을까. 팀장은 회의실이 아닌 커피숍으로 나를 불러 “미안하게 됐다”는 한마디를 던진다.
하지만 저자는 슬픔에 휩싸여 자책만 하는 패배자로 남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가능하지도 않은 엄청난 복수의 활극을 벌이지도 않는다. 그냥 ‘너나 내가 한 번쯤은 상상해 봤을 방법으로 억울함을 토로하다 끝내 이 상황이 갑과 을의 싸움이 아닌 병과 정의 싸움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이처럼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현실에서 받은 내 상처가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힘든 사회생활 속에서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아픔과 슬픔, 고민이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공감받아 속이 후련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