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부터 안개 속을 걷고 있는 국내 경제상황 속에서 최근 지난해 국내 맥주시장의 성적표가 공개됐다.
2024년 국내 맥주시장 성적표는 코로나 팬데믹에서 받은 상처와 내란의 여파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로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실적을 통해 대중 소비의 회복세를 가늠해 보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DART)의 매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 맥주 시장은 매출 기준으로 약 3조2000억원 정도로 추정되는 가운데 2023년에 비해 2500억원 정도 늘어난 수치를 보였다.
특히 국산 대기업 맥주 부문이 약 2조3000억원, 대기업 수입 맥주가 약 8000억원, 편의점 수제 맥주가 약 550억원, 나머지 소규모 수입사 및 크래프트 맥주가 650억원 정도로 매출부문에서 보면 5% 정도 늘어났지만 오비맥주와 일본맥주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는 힘겨운 1년을 보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명실상부 맥주계의 터주대감 카스가 한국 맥주 시장을 견인한 오비맥주의 지난해 매출은 1조7400억원으로 2023년에 비해 2000억원 정도 증가했으며 당기 순이익 또한 153억원에서 240억원으로 증가했다.
오비맥주 중 수입맥주는 15~20% 정도로 호가든과 버드와이저의 국내 생산과 일본 맥주,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가 매출에 일정부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오비가 야심차게 출시했던 한맥은 여전히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풀어야할 과제로 남겨졌다.
또한 하이트진로는 소주와 위스키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매출은 8200억원 정도로 2023년과 큰 차이가 없이 제자리걸음만 했다. 다만 그룹 전체 매출은 2조6000억원으로 700억원 늘었고 영업이익도 1000억원이 증가했는데 이는 켈리에 쏟아부었던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서 나타난 일시적 효과로 보인다.
롯데칠성음료 주류부문인 클라우드도 지난해 11월 크러시를 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30억원 정도 증가한 860억원에 그쳤다. 이 같은 증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클라우드가 전분을 넣지 않은 필스너를 생산했지만 마케팅과 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밀려 나타나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에는 불매운동으로 한동안 사라졌던 일본맥주가 2년 만에 수입 맥주 시장의 브랜드 순위 1위로 올라선 해이기도 하다. 한동안 한-일 갈등으로 인해 일본맥주의 빈틈을 채웠던 하이네켄과 칭다오 등이 정치권의 대외정책변화에 휩쓸리면서 힘을 잃고 친일 정책에 힘입은 일본 맥주가 다시 강세를 보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하이네켄은 가격을 올렸지만 전년에 비해 100억원 정도 줄어든 1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당기순손실이 280억원으로 70억원 줄인 것에 만족해야 했다. 칭다오 역시 제조과정에서 비위생적인 영상이 노출되며 시장에서 신뢰도가 추락해 매출이 무려 450억이나 감소했다.
반면 일본의 아사히가 수입맥주 1위를 탈환했다. 롯데아사히는 16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2023년에 비해 300억원 증가, 2022년 대비 1300억원 증가의 놀라운 기록을 올렸다.
이 외에도 수제 맥주 업계 최초로 코스피에 상장한 제주 맥주는 올해 제주 맥주 사명을 한울앤제주로 변경하며 맥주와 관계없는 한울반도체에게 24% 지분을 내줬다. 아울러 사업종목에 반도체 제조업과 폐기물 처리업을 추가한 제주맥주의 2024년 매출은 180억원에 그쳤고 업계에서는 제주 맥주가 더 이상 맥주 생산을 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때 편의점을 가득 채웠던 수제 맥주 중 곰표 밀맥주로 코스피 상장의 꿈을 꾸었던 세븐 브로이는 2022년 320억원, 2023년 120억원, 지난해 84억원으로 매출이 계속 하락 중에 있으며 영업손실 역시 90억원, 당기순손실 170억원으로 회사 존립조차 힘든 상황에 처했다.
올해 국내 맥주시장 전망 역시 내란사태로 불거진 국내 경기 악화는 미국 트럼프가 일으킨 관세 전쟁이 더해지며 불확실성에 힘을 실었고 이는 결국 올해 국내 경제에 가장 큰 악재로 작용하며 대형마트와 편의점 같은 가정용 채널을 통해 간신히 연명하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의 장기화가 결국에는 4캔 1만1000원을 유지할 수 있는 가정용 시장과 달리 프리미엄 가격으로 판매되는 유흥용 시장에는 필연적 악재로 작용하며 국내 맥주시장 전체가 침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2.8%로 예상한 반면 한국 정부는 스스로 1% 성장으로 전망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국내 경제 발목을 잡고 있는 외부 요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맥주 업계는 당분간 고난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